나는 한때 아이를 소유물처럼 여길 뻔했다. 내 자식이니 내 뜻대로 자라야 한다고, 은연중에 그렇게 믿고 있었다. 어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날부터 아이를 ‘손님’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진짜 손님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여기는 순간, 마음의 짐이 한 꺼풀 벗겨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았다. 회사에서도 나는 똑같은 착각을 하고 있었다. 아끼는 후배를 ‘내 사람’이라고 부르는 순간부터였다.

왜 우리는 구성원을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할까
모든 팀원을 똑같이 대하는 리더는 없다. 시간과 에너지가 유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더는 자연스럽게 유능하고 충성스러운 몇 명과 더 가까워진다. 신뢰와 호감, 심지어 운명공동체 같은 감정까지 나누는 사이가 된다. 조직행동론에서는 이것을 리더-구성원 교환(LMX, Leader-Member Exchange) 이론이라 부른다. 리더가 만드는 내집단과 외집단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내집단을 만드는 것 자체가 잘못인가? 아니다. 능력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기회를 받는 건 자연스럽다. 문제는 다음 단계에서 시작된다. 그 관계에 ‘가족’이나 ‘내 사람’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순간이다.
‘가족’이라는 이름표가 계약의 종류를 바꾼다
조직과 구성원 사이에는 계약서에 적히지 않은 또 하나의 계약이 있다. 심리적 계약(Psychological Contract)이다. 서로 무엇을 주고받을지에 대한 암묵적 기대의 총합이다. 원래 이 계약은 단순하다. 성과를 내면 보상과 인정을 받는다. 그런데 여기에 ‘가족처럼’, ‘내 사람처럼’이라는 말이 섞이면 계약의 성격이 통째로 바뀐다.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는 이것을 두 가지 규범으로 설명한다. 시장 규범과 사회적 규범이다. 시장 규범은 대가를 주고받는 교환이고, 사회적 규범은 정과 호의로 얽힌 관계다. NPR이 소개한 『상식 밖의 경제학(Predictably Irrational)』 발췌문에서 애리얼리는 경고한다. 장모님이 차린 추수감사절 저녁에 돈을 내겠다고 하는 순간, 장모님은 그 일을 몇 년이고 기억할 것이라고. 사회적 관계에 시장 규범을 들이밀면 관계는 훼손된다. 그리고 한번 훼손된 사회적 규범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같은 글에 실린 어린이집 연구가 그 증거다. 늦게 오는 부모에게 벌금을 물리자 지각은 ‘돈 내면 되는 것’이 되었고, 벌금을 없앤 뒤에도 부모들은 계속 늦게 왔다.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원래 리더와 구성원 사이는 시장 규범에 가깝다. 성과와 보상, 인정이 오간다. 여기에 가족이라는 사회적 규범을 얹으면 어떻게 될까. 구성원에게 기대하는 것은 이제 성과만이 아니다. 정서적 헌신, 무조건적 충성, 심지어 희생까지 은근히 기대하게 된다. 기대치가 할증되는 것이다.

기대가 커진 만큼, 실망도 정확히 그만큼 커진다
기대는 공짜가 아니다. 기대가 커지면 무너질 때의 낙폭도 그만큼 커진다. 심리적 계약 위반 연구들이 이 낙폭이 무엇을 갉아먹는지 보여준다. 구성원이 기대와 현실 사이의 격차를 지각하는 순간, 조직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 직무 만족도도 함께 떨어진다. 조직에 기여하려는 동기가 약해지고, 결국 이직 의도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낙폭은 리더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가족처럼 여기던 구성원이 승진에서 밀리거나, 퇴사를 결심하거나, 기대만큼 헌신하지 않으면 리더는 배신감을 느낀다. 그럼 실망은 누구의 몫인가? 리더도, 구성원도 둘 다 진다. 성과에 정서적 기대까지 얹었기 때문에, 무너질 때는 두 배로 무너진다.
그래서 대안이 필요하다. 정을 끊자는 게 아니다. 관계의 프레임을 바꾸는 것이다.
손님은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 그래서 예의를 다한다
손님을 떠올려보자. 손님은 언젠가 떠난다는 걸 서로 안다. 그래서 머무는 동안 극진히 대접한다. 동시에 아무리 가까워도 속을 다 내보이지는 않는다. 늘 적정한 거리를 두고, 그 거리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 만약 손님이 무례하게 굴면 어떻게 하는가. 그만큼 거리를 벌리면 된다. 가족이라면 이렇게 못한다. 가족이 무례해도 관계를 끊기는 어렵다. 하지만 손님이라면, 밀어낼 수 있다. 여기서 결정적인 차이가 생긴다.
구성원도 다르지 않다. 언젠가 이 조직을 떠난다. 이직, 퇴직, 이동. 형태는 달라도 결국 떠난다. 이것을 부정하고 ‘가족이니 영원히 함께’라는 프레임을 씌우면 현실과 어긋난다. 실제로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가 소개한 조사에 따르면, 처음 관리자가 된 사람의 90%가 상사와 친구 사이의 경계를 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70% 이상은 관리자가 된 뒤 그 우정 자체를 잃었다. 친밀함을 지키려다 리더십도, 관계도 둘 다 놓친 셈이다.

HBR이 제안하는 해법도 결국 손님 대접의 원리와 같다. 권력의 변화를 인정할 것. 팀 전체에게 일관되고 공정한 태도를 유지할 것. 어려운 결정에서 감정을 배제할 것. 전부, 적정한 거리를 지키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여기까지는 원리다. 그런데 이 원리를 매일 실천하게 만드는 장치가 하나 있다. 나에게는 그것이 존댓말이었다.
왜 나는 구성원에게 절대 반말을 하지 않는가
회식 자리였다. 한 팀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팀장님,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저희가 불편합니다.” 예의를 갖춰 건넨 말이었다. 나는 순간 얼버무렸다. “저는 그게 잘 안되네요.” 그날 이후 한동안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너무 거리를 두고 있는 건 아닐까.
옆자리 팀장은 팀원에게 반말을 쓰고, 호칭도 이름만 부른다. 나는 ‘김 매니저님’, ‘홍 과장님’처럼 끝까지 존칭을 붙였다. 구성원 입장에서는 그게 유난히 어려운 상사로 보였을 수도 있다. 그 고민은 꽤 오래갔다.
그래도 나는 방식을 바꾸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반말을 쓰고 이름을 편하게 부른다고 인간적인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 있다. 물론 존댓말을 고수하면 구성원에 대한 의사결정이 때로는 차갑게, 매몰차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도 나는 그 선이 있어야 누구에게나 공정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감정의 문제만은 아니다. 데이터로도 확인된다. 관대화 오류(leniency bias)와 친화성 편향(affinity bias) 연구는, 평가자가 실제 성과와 무관하게 개인적으로 친밀하거나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끼는 구성원에게 더 후한 평가를 준다고 지적한다. AIHR(Academy to Innovate HR)이 든 사례에서는 이 편향이 급여 인상률 배분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성과가 좋아도 사교적이지 않은 구성원은 낮은 인상률을 받고, 성과가 평범해도 친화적인 구성원은 더 후한 인상률을 받는 식이다.
실제로 성과평가 데이터를 팀장 단위로 뜯어보면 이 패턴이 종종 드러난다. ‘내 사람’이라 불리는 구성원의 평가 등급이 산출물 대비 유독 후하게 나오는 경우다. 많은 조직이 캘리브레이션(calibration, 등급 분포 보정 회의)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관계의 온도가 평가의 잣대를 흔들지 않도록 막는 장치다. 평가를 관계가 아니라 기여 중심으로 재설계하는 방법은 이전 글 성과평가 공정성을 높이는 법에서 자세히 다뤘다. 존댓말과 호칭은 그래서 사소한 습관이 아니다. 평가자의 판단이 관계가 아니라 성과를 보게 만드는, 가장 값싼 방화벽이다.
가족형 리더와 손님형 리더는 위기 앞에서 다르게 반응한다. 표로 정리하면 이렇다.
| 구분 | 가족형 리더 | 손님형 리더 |
|---|---|---|
| 기대치 | 성과 + 정서적 헌신까지 기대 | 합의된 성과와 역할까지만 기대 |
| 무례함에 대한 반응 | 참거나 방치한다 | 거리를 벌려 대응한다 |
| 이직·이동 앞에서 | 배신감을 느낀다 |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받아들인다 |
| 장기적 결과 | 신뢰와 공정성이 흔들린다 | 예의와 신뢰가 함께 유지된다 |
표만 봐도 답은 나온다. 손님형 리더는 차갑지 않다. 오히려 더 예의 바르다.
손님 대접은 말로 그치지 않는다. 실무에서는 몇 가지 장면으로 드러난다. 사적인 고민까지 시시콜콜 관여하지 않는 것. 성과 평가와 개인적 친밀함을 분리하는 것. 그리고 구성원이 조직을 떠날 때, 서운함보다 예의를 앞세워 배웅하는 것이다. 오프보딩(offboarding, 퇴사 절차)을 대하는 태도만 봐도 그 리더가 가족형인지 손님형인지 드러난다. 가족형 리더는 떠나는 사람을 서운해하거나 원망한다. 손님형 리더는 다음 행선지를 축하한다.
이 글의 핵심은 세 가지다. 가족처럼 대하는 순간 기대치는 성과를 넘어 정서의 영역까지 할증된다. 기대가 커진 만큼 심리적 계약이 깨졌을 때의 낙폭도 커져, 신뢰와 만족과 잔류 의지가 함께 무너진다. 손님 대접은 정을 주지 않는 게 아니라, 적정한 거리 안에서 극진히 대하는 것이다.
손님을 소유하려는 사람은 없다. 다만 머무는 동안 잘 모시고, 떠날 때 잘 보내줄 뿐이다. 리더의 일도 다르지 않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