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일을 AI에게 맡겨도 되는가.” 요즘 어느 조직에서나 나오는 질문이다. 그리고 대부분 잘못된 질문이다. 틀린 부분은 ‘AI에게’가 아니라 ‘이 일’이다 — 여기서 ‘일’이 직무를 가리키는 한, 이 질문은 영원히 답이 안 나온다.
심사역이라는 직무를 통째로 Agent에게 넘길 수 있는가? 없다. 그럼 심사역의 일 중 재무비율 산출과 동종업계 비교는? 넘길 수 있다. 전례 없는 구조의 안건에 조건부 승인을 설계하는 판단은? 못 넘긴다. 같은 직무 안에서 답이 갈린다. 그러니 배분의 단위는 직무가 아니라 과업이고, 과업을 가를 자가 필요하다.
이 글은 그 자를 다룬다. 결론부터 말하면, 자는 스킬 레벨이다. AI 에이전트가 잠식하는 영역은 Lv2까지이고, 사람의 영역은 Lv3부터 시작된다. 왜 그 경계인지, 레벨 하나로 부족할 때 무엇을 더 봐야 하는지, 그리고 이 배분이 조직에 남길 부작용까지 순서대로 짚는다.
직무 단위 질문은 왜 실패하는가
직무 단위로 물으면 답이 안 나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AI의 능력이 직무 경계를 따라 분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과 BCG가 컨설턴트 75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이 이걸 정확히 보여줬다. AI 역량 경계 안쪽의 과업에서는 AI를 쓴 그룹의 품질이 40% 이상 높아졌지만, 겉보기 난이도가 비슷한 경계 바깥 과업에서는 오히려 정답률이 19%포인트 낮아졌다. 연구진은 이 들쭉날쭉한 경계를 ‘들쭉날쭉한 기술 경계(jagged technological frontier)’라 불렀다. 같은 직무 워크플로 안에서, 비슷해 보이는 과업들이 경계의 양쪽에 흩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 발견이 배분 문제에 주는 함의는 두 가지다.
하나. 배분은 과업 단위로 해야 한다. “심사 업무를 자동화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심사를 구성하는 아홉 개 과업 중 어느 것을 넘길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 관점 전환 — 사람 수에서 과업으로 — 은 “한 명만 더 뽑아주세요”가 통하지 않는 시대 — Headcount에서 Task × Skill로에서 다뤘다.
둘. 경계가 직관으로 안 보인다는 것이다. 실험에서 컨설턴트들은 어느 과업이 경계 안인지 스스로 구분하지 못했고, AI가 약한 곳에서 오히려 AI를 더 믿었다. 그러니 “해보면 알겠지”는 배분 전략이 못 된다. 경계를 예측할 수 있는 자가 필요하다.
그 자가 무엇인가. 여기서부터가 이 글의 본론이다.
Agent가 잠식하는 것은 Lv2까지다

스킬 레벨 체계를 먼저 놓자. 전편에서 다룬 5단계다.
| 레벨 | 정의 | 수행 주체 |
|---|---|---|
| Lv0 미보유 | 수행 경험·지식 없음 | — |
| Lv1 기초·보조 | 감독 하에 정형 업무를 보조 수행 | Agent 잠식 |
| Lv2 독립 수행 | 정형~중간 난이도를 독립 수행 | Agent 잠식 진행 중 |
| Lv3 전문·지도 | 비정형·고난도를 독립 판단, 타인을 검토·코칭 | 사람 (Agent는 보조) |
| Lv4 권위·기준 설정 | 기준과 방법론을 수립, 전례 없는 문제를 최종 판단 | 사람 |
핵심 주장은 한 줄이다. Agent가 잠식하는 것은 Lv2까지다. 정형에서 중간 난이도까지의 독립 수행 — 패턴이 존재하고, 절차가 문서화되어 있고, 정답의 범위가 정의된 과업. 여기까지가 Agent의 영토다.
왜 하필 그 경계인가? Lv2와 Lv3의 정의를 다시 보면 답이 보인다. Lv2까지는 ‘패턴 안에서의 수행’이다. Lv3부터는 세 가지가 추가된다. 전례가 없는 상황에서의 판단. 그 판단에 대한 책임. 그리고 타인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코칭. 이 셋은 성격이 다르다.
전례 없는 판단은 학습 데이터 분포 바깥의 문제다 — 패턴 학습 기계가 구조적으로 가장 약한 지점이다. 책임은 기술이 아니라 제도의 문제다 — 특히 금융권처럼 책무구조도로 임원 개인에게 책임을 귀속시키는 산업에서, “Agent가 판단했다”는 면책 사유가 되지 않는다. 코칭은 관계의 문제다 — 피드백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신뢰는 산출물이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 생긴다.
그래서 Lv2와 Lv3 사이의 경계는 단순한 숙련도 구분선이 아니다. 조직과 개인의 생존선이다. Lv2에 머무는 사람의 과업 포트폴리오는 시간이 갈수록 Agent와 겹치고, Lv3 이상의 과업을 쥔 사람의 포트폴리오는 Agent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값이 오른다 — 검토하고 책임질 사람이 더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한 가지 짚고 가자. 이 경계는 고정선이 아니다. 모델이 좋아질수록 잠식선은 Lv2 안쪽에서 위로 밀고 올라온다. 그래서 “우리 조직의 잠식선이 지금 어디인가”는 일 년에 한 번은 다시 그려야 하는 지도다. 다만 방향은 분명하다 — 책임과 코칭이 걸린 지점은 기술이 아무리 좋아져도 제도가 사람을 요구한다.
여기까지가 원칙이다. 그런데 원칙을 현장에 대면 곧바로 예외가 튀어나온다.
레벨 하나로는 부족하다 — 보조 판별 기준 셋
요구 레벨이 Lv2인데도 Agent에게 넘기면 안 되는 과업이 있다. 반대로 넘겨도 되는데 아무도 안 넘기는 과업도 있다. 레벨은 첫 번째 필터일 뿐, 판별을 완성하려면 세 가지를 더 봐야 한다.
| 보조 기준 | 질문 | 판별 |
|---|---|---|
| 오류 비용 | 틀렸을 때 되돌릴 수 있는가, 책임은 누가 지는가 | 비가역·고비용·대외 책임 → 레벨 무관하게 사람 검토 필수 |
| 데이터·컨텍스트 가용성 | 판단에 필요한 정보가 시스템 안에 있는가 | 핵심 정보가 암묵지·관계·현장에 있으면 Agent 불가 |
| 정형성·반복 빈도 | 같은 패턴이 얼마나 자주 반복되는가 | 저빈도·일회성 과업은 자동화 투자 대비 효과 없음 |
실제 판별은 이 순서로 돌린다. ① 이 과업의 요구 레벨이 Lv2 이하인가 → 아니라면 사람. ② Lv2 이하라면, 오류 비용이 감당 가능한가 → 아니라면 Agent 산출 + 사람 승인 구조. ③ 필요한 데이터가 접근 가능한가 → 아니라면 데이터 정비가 선행 과제. ④ 반복 빈도가 투자를 정당화하는가 → 아니라면 그냥 사람이 한다. 네 문항이면 대부분의 과업이 갈린다.
설계 예시로 감을 잡아보자. 기업금융 심사 조직의 과업이라면 이렇게 갈린다. 정형 재무비율 산출과 동종업계 비교 — 요구 레벨 Lv2, 오류는 검토 단계에서 잡히고, 데이터는 시스템 안에 있고, 매 안건 반복된다. Agent에게 간다. 전례 없는 구조의 안건에 대한 조건부 승인 설계 — 요구 레벨 Lv3, 오류는 부실로 직결되고, 판단 근거의 절반은 심사역의 축적된 감각에 있다. 사람이 하되 Agent가 초안과 유사 사례 검색으로 보조한다. 같은 직무, 정반대의 배분이다.
최근 심사 조직의 스킬 택소노미를 설계하면서 21개 스킬 각각에 Lv0~4 행동 앵커를 붙여봤다. 그 작업을 하고 나서야 분명해진 것이 있다 — 요구 레벨을 붙이는 순간 Task × Skill 매트릭스는 역량 관리 문서가 아니라 배분 지도가 된다. 어느 칸이 Agent의 영토이고 어느 칸이 사람의 최후 방어선인지가 표 위에 그대로 드러난다.
물론 이 판별에는 전제가 하나 있다. 레벨 데이터 자체가 정직해야 한다는 것. 자기신고로 오염된 레벨 위에 배분을 얹으면 지도 전체가 틀린다 — 측정과 검증을 어떻게 설계하는지는 스킬은 자기신고하는 순간 오염된다 — 스킬 기반 HR의 성패를 가르는 측정과 검증 설계에서 다뤘다.
그럼 지도대로 배분하면 끝인가. 아니다. 배분이 잘 될수록 커지는 문제가 하나 있다.
배분의 부작용 — 사다리의 아래 칸이 사라진다
Lv1~Lv2 과업을 Agent에게 넘긴다는 말을 뒤집으면 이렇게 된다. 신입과 주니어가 훈련하던 과업을 넘긴다. 정형 업무의 반복 — 지루하지만, 사람은 정확히 그 반복을 통해 Lv1에서 Lv2로, Lv2에서 Lv3으로 올라왔다. 사다리의 아래 칸을 Agent가 차지하면, 10년 뒤의 Lv3는 어디서 만들어지는가.
이건 가상의 걱정이 아니다. 스탠퍼드 디지털경제연구소가 미국 급여 데이터로 추적한 결과, 경제 전반의 대량 실직은 관찰되지 않았지만, AI 노출도가 높은 직종의 22~25세 고용은 덜 노출된 또래 대비 약 19% 낮은 수준까지 벌어졌고, 이 감소는 해고가 아니라 신규 채용 축소를 통해, 그리고 AI가 사람을 보조하는 직종이 아니라 대체하는 직종에 집중되어 나타났다. 시니어는 멀쩡한데 사다리의 첫 칸만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조직 구조 차원에서 이 압력이 중간관리 계층을 어떻게 바꾸는지는 AI 에이전트가 중간관리자를 없앤다 — 조직 구조는 어떻게 바뀌는가에서 다룬 바 있다.
예전에 11년치 인사 데이터로 저성과 시니어 1,659명을 분석했을 때, 하락의 뿌리는 나이가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조기 보임이었다. 사다리를 건너뛰게 한 대가를 조직은 십수 년 뒤에 치렀다. Agent가 사다리 아래 칸을 통째로 들어내는 지금, 같은 실수를 훨씬 큰 규모로 반복할 조건이 갖춰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배분 설계에는 육성 조항이 함께 들어가야 한다. 방법은 두 방향이다. 하나, Lv2 과업 전부를 넘기지 않고 수련용 과업을 의도적으로 보존한다 — 효율은 조금 잃지만 육성 파이프라인을 산다. 둘, Agent의 산출물을 검토·수정하는 과정 자체를 훈련으로 재설계한다 — 초안 작성 대신 초안 비판이 새로운 수련이 되도록. 어느 쪽이든 공짜는 아니다. 배분의 효율과 육성의 비용 사이에서 조직이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은 자동화 ROI 계산서에는 절대 나타나지 않는다.
이 글의 핵심 세 가지
- 배분의 단위는 직무가 아니라 과업이다 — AI의 능력 경계는 들쭉날쭉해서 직관으로 안 보이며, 같은 직무 안에서도 과업마다 답이 갈린다.
- 판별의 자는 스킬 레벨이다 — Agent의 잠식은 Lv2까지, 사람의 영역은 비정형 판단·책임·코칭이 시작되는 Lv3부터다. 오류 비용, 데이터 가용성, 반복 빈도 세 가지를 보조 필터로 얹으면 판별식이 완성된다.
- 배분의 청구서는 육성으로 날아온다 — Lv1~2 과업을 넘기면 사다리의 아래 칸이 사라진다. 수련 과업 보존이든 검토 훈련 재설계든, 육성 조항 없는 배분 설계는 미완성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무엇을 AI에게 맡길 것인가”는 기술 질문처럼 들리지만, 끝까지 따라가 보면 측정 질문이다. 과업의 요구 레벨을 잴 수 있는 조직만이 배분을 설계할 수 있고, 잴 수 없는 조직에서 배분은 목소리 큰 부서의 정치가 된다. 자가 없으면 지도가 없고, 지도가 없으면 영토는 소문으로 나뉜다.
배분의 언어를 가진 조직이 전환의 속도를 가진다.
다음 편에서는 이 지도의 마지막 조각을 다룬다 — 레벨 데이터를 조직 단위로 펼쳤을 때 드러나는 것, 즉 특정 스킬이 한 사람에게만 몰려 있는 단일 장애점(SPOF)과 커버리지 히트맵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