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은 동의가 아니다 — 잘 듣는 리더가 주도권을 잃지 않는 법

경청과 동의를 분리해 주도권을 잃지 않는 리더의 경청법을 표현한 대표 이미지

리더십 교육에서 빠지지 않는 단어가 경청이다. 팀원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맞는 말이다. 그런데 정작 현장의 팀장들은 이 당연한 말 앞에서 머뭇거린다. 끝까지 들어주면, 동의한 것이 되어버릴까 봐.

이 두려움은 생각보다 넓게 퍼져 있다. 팀원이 면담에서 불만을 꺼내면 다 듣기도 전에 방어부터 시작하는 팀장이 있다. 게으르거나 권위적이어서가 아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그것이 “팀장님도 인정하셨다”가 되어 돌아올 것 같아서다. 경청하라는 요구와 결정권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 사이에서, 적지 않은 리더가 결국 듣기를 줄이는 쪽을 택한다.

문제는 태도가 아니다. 등식이다.

팀장은 왜 듣는 것이 두려운가

경청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를 심리학은 오래전에 짚어놓았다. 폴커 키츠(Volker Kitz)와 마누엘 투쉬(Manuel Tusch)는 『마음의 법칙』에서, 인간관계에서 빚어지는 심각한 오해는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곧 ‘찬성’이며 이해한다는 것이 곧 ‘동의’라고 여기는 데서 생겨난다고 지적한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면 그것이 곧 자신의 입장을 포기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탓에, 우리는 귀 기울여 듣는 일 자체를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남의 의견에 동조해 입장을 포기하는 것은 패배나 다름없다고 여기면서.

리더의 자리에서는 이 오해가 한 번 더 증폭된다. 팀장의 끄덕임은 개인의 공감이 아니라 조직의 승인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면담에서 “알겠다”고 말한 것이 “알아서 해주겠다”로 번역되어 돌아오는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면, 팀장은 듣는 행위 자체를 경계하게 된다. 귀를 닫는 것이 아니라, 귀를 여는 비용이 너무 커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처방은 “더 잘 들어라”는 훈계가 아니다. 머릿속에서 두 개념을 잘라내는 것이다.

머릿속의 가위 — 경청과 동의는 다른 작업이다

『마음의 법칙』이 제안하는 도구는 단순하다. 머릿속의 가위. 경청과 찬성 사이, 이해와 동의 사이를 가위로 잘라 분리하라는 것이다. 실제로 두 작업은 하는 일이 다르다.

판단 이전의 경청과 판단 이후의 동의를 가위로 잘라 분리하는 개념을 정리한 도해

구분 경청 동의
하는 일 상대의 맥락과 정보를 수집한다 나의 입장을 정한다
시점 판단 이전 판단 이후
상대에게 주는 메시지 “나는 너의 상황을 이해했다” “나도 너와 같은 입장이다”
주도권 리더에게 그대로 남는다 결정에 반영된다

“이해했다”와 “동의한다”는 다른 문장이다. 이해는 상대의 논리를 내 언어로 재구성할 수 있다는 뜻이고, 동의는 그 논리에 내 입장을 겹치겠다는 뜻이다. 이해 없이 동의부터 하면 부화뇌동이 되고, 이해까지만 하고 동의를 유보하는 것은 실력이 된다.

잘 듣는 것이 수동적인 일이라는 통념도 사실과 다르다. 잭 젠거(Jack Zenger)와 조셉 포크먼(Joseph Folkman)은 HBR 기고에서 뛰어난 경청자는 말없이 흡수하는 스펀지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고 상대의 생각을 되돌려주며 대화를 증폭시키는 트램펄린에 가깝다고 정리했다. 잘 듣는 사람은 대화를 멈추는 사람이 아니라 대화를 키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까지 정리해도 여전히 남는 질문이 있다. 끝까지 듣고 나면, 결정의 주도권은 어디에 있는가.

잘 들으면 주도권을 빼앗기는가

빼앗기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주도권은 마지막에 결정하는 사람에게 있다. 그리고 결정의 품질은 결정 직전까지 모인 정보의 품질을 넘지 못한다. 리더에게 경청은 주도권을 넘겨주는 양보가 아니라, 더 나은 결정을 내리기 위한 정보수집이다. 듣지 않는 리더는 주도권을 지킨 것이 아니다. 정보 없이 결정하는 위험을 떠안은 것이다. 걸러진 보고 위에서 내린 결정은 머지않아 현실에 부딪혀 뒤집힌다. 그때 잃는 것이 진짜 주도권이다.

경청은 동시에 존중의 표시다. 끝까지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상대에게 신호를 보낸다. 너의 맥락은 결정에 반영될 가치가 있다는 신호다. 실제 반영 여부와는 별개로 작동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 신호가 쌓이면 구성원은 걸러내지 않은 정보를 리더에게 가져오기 시작한다. 심리적 안전감의 출발점이 거창한 제도가 아니라 회의실에서의 듣는 태도인 이유다.

그렇다면 실무에서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듣되, 동의로 오해받지 않는 화법이 필요하다.

경청을 동의와 분리하는 세 가지 화법

1. 되짚되, 판단은 미룬다

상대의 말을 요약해 되돌려준다. “네 얘기는 일정보다 품질이 문제라는 거지?” 이 문장은 이해를 확인할 뿐 입장을 정하지 않는다. 되짚기만으로도 상대는 자신의 말이 정확히 전달됐다고 느끼고, 리더는 아직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한다. 듣는 동안의 끄덕임은 “계속 말하라”는 신호일 뿐, 승인이 아니라는 것을 화법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2. 이해와 결정을 한 문장에서 분리한다

“충분히 이해했다. 다만 결정은 별개의 문제다. 정리해서 내 판단을 이야기하겠다.” 이해의 표시와 판단의 유보를 같은 자리에서 말하면, 끄덕임이 승인으로 번역될 여지가 사라진다. 결정을 통보할 때도 같은 구조를 쓴다. “너의 우려는 이해한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이렇게 간다. 이유는 두 가지다.” 이해와 결정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반복해서 보여주면, 구성원도 경청을 동의로 오해하지 않게 된다.

3. 들은 것이 어디로 갔는지 알려준다

경청의 완성은 듣는 순간이 아니라 그 후에 온다. 결정이 내려진 뒤, 들었던 의견이 어떻게 반영됐는지, 반영되지 않았다면 왜 그런지를 돌려주는 것이다. 이 피드백이 없으면 아무리 열심히 들어도 ‘듣는 척’으로 기록된다. 반대로 반영되지 않은 의견의 주인도 자신의 말이 결정 테이블까지 올라갔다는 것을 확인하면, 다음에도 말한다. 정보가 리더에게 계속 모이는 조직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이 글의 핵심 세 가지

  • 경청이 두려운 이유는 태도가 아니라 등식이다 — 경청=찬성, 이해=동의라는 오해가 리더의 귀를 닫게 만든다.
  • 경청과 동의는 다른 작업이다 — 경청은 판단 이전의 정보수집이고, 동의는 판단 이후의 입장 표명이다. 둘 사이를 잘라내는 머릿속의 가위가 필요하다.
  • 잘 듣는 리더가 주도권을 지킨다 — 결정의 품질은 모인 정보의 품질을 넘지 못하고, 경청은 그 정보가 리더에게 모이게 하는 통로이자 상대에 대한 존중의 표시다.

경청을 잘하는 리더와 못하는 리더의 차이는 인내심이 아니다. 듣는 것과 정하는 것을 분리할 수 있는가의 차이다. 분리가 되는 리더는 끝까지 듣고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끝까지 들어준 리더의 “아니다”는, 듣지 않은 리더의 “아니다”와 전혀 다른 무게로 전달된다.

귀를 여는 것과 손을 드는 것은 다른 동작이다. 리더는 그 둘을 구분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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