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가 끝나자 본부장이 웃으며 한마디 던졌다. “역시 아직은 OO팀장이 살아있네. 팀원이 팀장을 서포트 못 해주는 것 같아.” 칭찬이었다. 팀장은 기분 좋게 회의실을 나섰다. 그 뒤를 따라 나오던 팀원의 표정은 달랐다. 그날 기획안을 만든 사람은 팀원이었다.
나는 이 장면을 여러 번 봤다. 그리고 이 장면이 반복되는 팀은, 예외 없이 같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왜 유능한 팀원일수록 ‘내가 빛나는 팀장’이 되는가
신임 팀장으로 보임되는 사람은 대부분 성과와 역량이 검증된 사람이다. 당연하다. 조직은 잘하는 사람을 올린다. 문제는 그 ‘잘함’의 종류다.
팀원 시절의 성과는 개인의 것이다. 내가 만든 기획안, 내가 낸 숫자, 내가 받은 인정. 그 성과가 나를 빛내주고, 그 빛 덕분에 팀장과 실장의 눈에 띄고, 그래서 동료보다 좋은 평가를 받는다. 협업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 조직 안에서 나를 더 두드러지게 만드는 것이 생존의 문법이었다. HR에서는 이런 역할을 개인 기여자(Individual Contributor, 이하 IC)라 부른다.
IC를 기가 막히게 잘하던 사람이 팀장이 된다. 그런데 자리가 바뀌었다고 습성까지 바뀌지는 않는다. 그는 여전히 자기가 성과를 내야 하고, 다른 팀장들보다 더 두드러져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그래서 팀원이 나를 빛나게 해줘야 한다고, 적어도 팀원보다는 내가 더 빛나야 한다고 무의식중에 생각하게 된다.
하버드경영대학원의 린다 힐(Linda A. Hill)은 이 전환을 오래 연구해 온 학자다. HBR에 실린 논문 ‘Becoming the Boss’에서 그는 스타 성과자들이 관리자가 된 뒤 처음 마주하는 시험에서 실패하는 이유를 “책임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일련의 흔한 오해” 때문이라고 정리했다. 잘하던 사람이라서 실패하는 게 아니다. 잘하던 방식 그대로 하기 때문에 실패한다.
그렇다면 팀장이 실무에서 계속 빛나는 것 자체가 나쁜가? 아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런 팀장이 더 필요할 때도 있다. 문제는 빛의 방향이다.
보고 자리에서 팀장이 팀원을 지우는 순간
앞의 장면을 조금 더 자세히 보자. 요즘은 기획안을 쓴 실무자가 직접 보고하는 풍경이 익숙하다. 팀장과 팀원이 몇 번의 회의를 거쳐 기획안을 다듬고, 실장과 본부장을 모셔놓고 보고를 시작한다.
보고 중반, 본부장이 미진한 부분을 짚는다. 확인이 덜 된 데이터를 지적하거나, 아예 다른 관점의 방향을 제안하기도 한다. 여기서 갈림길이 생긴다.
배석한 팀장이 끼어든다. “그 부분은 OO님이 미처 못 챙긴 것 같은데요.” 그러고는 본부장이 던진 방향에 살을 붙여 자기 아이디어를 신나게 구체화한다. 말은 유창하고 내용도 좋다. 본부장은 만족한다. 그리고 회의 후 그 한마디가 나온다. “역시 OO팀장이 살아있네.”
이제 팀원의 머릿속을 보자. “이럴 거면 당신이 직접 만들지, 왜 나한테 시켰어.” 이 생각을 안 하는 팀원은 없다. 그날 이후 팀원은 기획안을 100%로 만들지 않는다. 어차피 팀장이 뒤집을 테니까. 팀장은 그것을 보고 또 생각한다. 역시 내가 챙겨야 한다고. 이 순환이 한 바퀴 돌 때마다 팀장의 실무 능력은 본부장에게 더 강하게 각인되고, 팀원의 성장은 그만큼 멈춘다.

실무 능력이 뛰어난 팀장은 굉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다만 그 힘을 쓰는 방향이 틀렸다. 그 능력은 본부장 앞에서 보여줄 것이 아니라, 팀원에게 가르치고 설명하는 데 써야 한다. 본부장이 짚을 부분을 팀장이 먼저 짚어 팀원과 함께 메웠다면, 보고 자리에서 빛나는 사람은 팀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팀원을 키운 팀장은 한 단계 위에서 빛났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팀장 개인의 태도 문제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문제를 키우는 것은 팀장 혼자가 아니다.
“아직 팀장이 살아있네”라는 칭찬이 조직을 망친다
본부장의 그 한마디를 다시 보자. “역시 아직은 OO팀장이 살아있네.” 이 말은 팀장에게 무엇을 보상하는가. 팀원을 키운 것이 아니다. 팀원을 대신한 것을 보상한다. 조직의 윗선이 IC 방식의 팀장을 계속 칭찬하는 한, 그 팀장은 역할을 전환할 이유가 없다.
데이터로 봐도 방향은 분명하다. 구글이 자사 관리자 데이터를 분석한 프로젝트 옥시전(Project Oxygen)에서, 좋은 관리자의 행동 목록 맨 앞에 온 것은 ‘좋은 코치다’, 그리고 ‘팀에 권한을 주고 세세하게 간섭하지 않는다’였다. 실무를 가장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무를 가장 잘하게 만드는 사람이 좋은 관리자였다는 뜻이다.
팀장 개인의 평가는 해마다 좋은데, 그 팀에서는 다음 팀장감이 나오지 않는 팀. 주변에서 한 번쯤 봤을 것이다. 그 팀장이 이동하고 나면 팀은 한동안 휘청인다. 팀장이 빛나는 동안 팀원은 그림자였기 때문이다. 이 패턴은 이전 글 좋은 리더의 조건 — 내가 없어도 돌아가는 팀을 만들 수 있는가에서 다룬 ‘대체 가능한 리더’의 문제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그러니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이 팀장이 아직 살아있는가”가 아니다. “이 팀장 밑에서 누가 살아나고 있는가”다.
팀장은 팀원을 빛내서, 그 빛으로 빛나는 자리다
팀장이라는 자리의 정의를 다시 쓰자. 팀장은 조직을 빛나게 하고 구성원을 빛나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내가 빛나는 사람이다. 반대가 되면 안 된다. 조직과 구성원이 나를 빛나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순간, 그 팀은 팀장 한 사람의 무대가 된다.
리즈 와이즈먼(Liz Wiseman)은 『멀티플라이어(Multipliers)』(2010)에서 이 두 유형의 리더를 멀티플라이어와 디미니셔로 나눴다. 구성원의 지능과 역량을 끌어내 배가시키는 리더와, 자기가 방 안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어야 해서 구성원의 역량을 깎아먹는 리더다. 보고 자리에서 팀원을 지우고 자기 아이디어를 펼치는 팀장은 후자의 전형이다. 본인은 팀을 이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팀의 크기를 자기 크기로 줄이고 있다.
그렇다면 실무 능력이 뛰어난 팀장은 그 능력을 어디에 써야 하는가. 세 곳이다.
| 장면 | 내가 빛나는 팀장 | 남을 빛나게 하는 팀장 |
|---|---|---|
| 보고 전 | 팀원이 만든 것을 받아서 자기 것으로 고친다 | 윗선이 짚을 지점을 미리 알려주고 팀원이 직접 메우게 한다 |
| 보고 중 | 지적이 나오면 팀원 탓으로 돌리고 자기 아이디어를 편다 | 지적을 팀의 몫으로 받고, 답은 팀원이 하게 기다린다 |
| 보고 후 | “내가 살렸다”는 인식을 쌓는다 | 잘한 것은 팀원 이름으로, 부족한 것은 팀장 책임으로 정리한다 |
표의 오른쪽 열이 어렵다는 것을 안다. 특히 세 번째 줄, 부족한 것을 팀장 책임으로 가져오는 일은 IC 시절의 본능과 정면으로 부딪힌다. 팀원 시절 우리는 내 실수가 아닌 것을 내 것으로 만들지 않도록 배웠다. 팀장은 그 반대를 해야 한다. 잘한 것은 흘려보내고, 못한 것은 붙잡는다.
역할 전환은 결심이 아니라 질문의 교체다
IC에서 팀장으로의 전환은 “이제부터 잘 이끌겠다”는 결심으로 되지 않는다. 습성은 결심보다 힘이 세다. 대신 매일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을 바꾸는 방식이 통한다.
팀원 시절의 질문은 “내가 어떻게 하면 더 성과를 낼까”였다. 팀장의 질문은 두 개다. 팀원들이 어떻게 하면 더 성장할 수 있을까. 지금 하는 일이 어떻게 하면 이들에게 더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이 두 질문을 늘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 그게 팀장이라는 자리의 정의다.

이 질문은 보고 자리에서 곧바로 시험된다. 본부장이 미진한 부분을 짚는 순간, 팀장의 입이 먼저 열리려 할 것이다. 그때 한 박자를 참고 팀원 쪽을 보는 것. 그 한 박자가 팀원에게는 “이 일은 내 것”이라는 감각을 돌려주고, 본부장에게는 “이 팀은 팀장 없이도 답을 낸다”는 신호를 준다. 팀장이 빛나는 데는 그 신호가 훨씬 오래간다.
이 글의 핵심은 세 가지다. 유능한 IC가 팀장이 되면 자기가 빛나야 한다는 습성을 그대로 들고 온다. 보고 자리에서 팀원을 지우고 자기가 빛나는 순간, 팀원의 성장과 팀의 다음 리더가 함께 사라진다. 팀장의 실무 능력은 윗선에게 보여줄 것이 아니라 팀원에게 가르치는 데 써야 하며, 팀장은 팀원을 빛내서 그 빛으로 빛나는 자리다.
빛은 어디서 오든 결국 위로 올라간다. 팀장이 팀원을 비추면, 그 빛은 팀장을 지나 조직에 닿는다. 팀장이 자기만 비추면, 빛은 거기서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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