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지겨워서요. 다른 걸 해보고 싶어서요.”
퇴사 면담에서 그가 한 말은 이게 전부였다. 고속승진, 늘 최상위 평가, 차기 보직자로 일찌감치 낙점된 팀원. 조직이 “다음은 저 사람”이라고 공공연히 말하던 사람이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대고 나가겠다고 했다. 다른 부서로 옮겨주겠다고 했다. 원치 않았다. 결국 퇴사했다.
나는 조직에 무슨 일이 있다고 확신했다. 팀장을 만났고, 같은 팀 사람들을 따로 불렀다. 갈등도, 과부하도, 보상 불만도 없었다. 모두 의아해했다. 퇴직 면담 기록에는 이렇게 남았다. 우수인재 이탈, 사유는 공란으로 처리.
그 면담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사실은 답이었다는 걸 아는 데 몇 년이 걸렸다.

인사는 사람의 9할을 다루는 일이다
HR이 가진 도구를 전부 꺼내놓아 보자. 평가, 보상, 승진, 배치, 교육, 승계, 몰입도 조사, 이탈 예측 모델. 이 도구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전부 조직이 사람에게 닿을 수 있는 영역에서 작동한다는 것이다. 자리를 주고, 돈을 주고, 등급을 매기고, 다음 자리를 약속한다.
그 팀원에게 이 도구들은 완벽하게 작동했다. 평가는 늘 최상위였고 승진은 남들보다 빨랐고 다음 자리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조직이 줄 수 있는 것은 다 줬다. 그런데 떠났다.
무엇을 놓쳤는가. 나는 오래 그렇게 물었다. 틀린 질문이었다. 놓친 것이 아니라, 애초에 볼 수 없는 영역이 있었던 것이다.
이 질문을 다시 잡게 해준 것이 이천 년 전 로마의 한 정치가였다.
세네카가 말한 “당신 안의 1할”
세네카는 네로의 스승이자 재상이었다. 로마에서 가장 많이 가진 사람 중 하나였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셀 수 없이 양보한 사람이었다. 그가 남긴 『인생은 짧지 않다』의 논지는 제목 그대로다. 인생이 짧은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인생을 자기 것으로 갖지 못하고 밖에 내어준다.
세네카가 경멸한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 아니다. 라틴어로 occupati, 점유된 사람이다. 바쁜 사람이 아니라 바쁨에 소유된 사람. 자리에 소유되고, 평판에 소유되고, “조금만 더”에 소유된 사람.
그리고 그는 사람 안에 운명도 타인도 닿을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썼다. 책에서는 이것을 “당신 안의 1할”이라 부른다. 나머지 9할은 운명이 흔들 수 있다. 자리도 빼앗기고 재산도 잃고 평판도 무너진다. 그러나 그 1할이 단단하면 그 사람은 무너져도 무너지지 않는다. 그 선이 어디인지는 누구도 가르쳐줄 수 없다. 당신만이 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HR의 도구는 전부 9할의 도구다.
세네카는 아우구스투스 이야기를 한다. 세상의 운명이 그의 한마디에 달려 있던 사람. 그런 그가 끊임없이 기도한 것은 오직 하나, 은퇴였다. 원로원에 보낸 편지에서 그는 쉬는 날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낀다고 썼다. 쉬는 것을 실제로 누리지 못하니, 쉬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은 것이다.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 가장 쉬고 싶어했다. 조직이 그 팀원에게 깔아준 사다리가 떠올랐다. 본인이 요청하기도 전에 조직은 그의 다음 자리를 정했고, 그 다음 자리까지 정했다. 우리는 그것을 인정이라 불렀다. 세네카의 눈에는 그것은 “점유”다.
그날의 장면을 다시 읽으면
세네카를 읽고 나서 그 직원의 퇴사 상황을 다시 떠올렸다. 그때는 다른 것이 보였다.
“지겹다”는 1할의 언어였다
당시 가장 납득이 안 갔던 말이 “지겨워서”였다. 그렇게 잘하는 사람이, 그렇게 인정받는 사람이 지겹다니. 나는 그 말을 동기부여의 문제로 번역했다. 새 과제가 필요하구나, 새 부서가 필요하구나.
세네카는 정확히 반대로 읽는다. 사람들은 직업을 바꾸고 도시를 바꾸고 관계를 바꾸고 취미를 바꾼다. 그런데 바꿀 때마다 돌아오는 곳은 같은 자리다. 결국 그들은 묻는다. “도대체 얼마나 더 같은 것을 반복해야 하는가.” 그 질문 앞에서 멈춰버린 사람이 그 팀원이었다.
그리고 세네카는 답이 새로운 직업에 있지 않다고 못 박는다. 답은 자기 안에 있다.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것, 자기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이 즐거워지는 것.
부서 이동 제안이 통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다. 그가 원치 않은 것은 다른 부서로의 제안 뿐만이 아니라, 어떤 부서든, 부서라는 답 자체였다. 그는 1할의 언어로 말했고 나는 9할의 언어로 답했다.
면담의 공백이 곧 증거였다
팀장도 동료도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조직에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다. 문제가 조직이 조사할 수 있는 영역에 없었기 때문이다.
면담은 9할을 조사하는 도구다. 상사와의 갈등, 업무 과부하, 보상 불만, 승진 누락. 이 항목들을 하나씩 지워나갔고 남는 것이 없었다. 우리는 그것을 “원인 미상 또는 (공란)”이라 적었다. 세네카라면 그 공백 자체를 답으로 읽었을 것이다. 조직이 볼 수 없는 곳에서 결정이 났다는 증거일테니까.
편안함에 녹은 것이 아니라, 한 번도 시험받지 못했다
세네카는 역경이 사람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이미 있던 것을 꺼낸다고 썼다. 단단한 사람에게서는 힘을, 빈 사람에게서는 공허를. 그래서 시험받지 않은 삶은 편한 삶이 아니라 자기가 누구인지 끝내 모르는 삶이다.
고속승진이 무슨 뜻인가. 한 번도 밀려나 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실패한 프로젝트도, 누락된 승진도, 사라진 자리도 없었다. 조직은 그를 너무 잘 대해줬다. 그래서 그는 이 조직 안에서 자기가 누구인지 확인할 기회가 없었다. 밖으로 나가서 알아보기로 한 것이다.
조직의 성공이 그의 1할을 굶겼다. 이것이 내가 세네카에게서 받은 가장 불편한 문장이다.
여기서 한 가지가 뒤집힌다. 세네카는 “쉬고 싶다는 말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그것은 당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다”라고 썼다. 살아 있는 사람만이 쉬고 싶어 한다. 살기를 포기한 사람은 쉬고 싶다는 말조차 잊는다.
떠난 사람은 1할이 살아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정말 걱정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같은 지표, 같은 평가, 같은 사다리 위에서 “조금만 더”를 되뇌며 남아 있는 다른 고성과자들이다. 세네카의 표현을 빌리면, 고난에 무너진 사람은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편안함에 녹아버린 사람은 일어설 것 자체가 남아 있지 않다.
인사 기록은 떠난 사람만 센다. 녹아가는 사람은 세지 않는다.
채울 수 없다면, HR은 무엇을 하는 기능인가

그러면 그 1할을 어떻게 채워줄 수 있는가. 이것이 오랫동안 내 숙제였다.
세네카의 답은 짧다. 채울 수 없다. 그 영역은 운명도 사람도 닿지 못한다. 인사 담당자는 여기서 무력해진다. 그런데 이 질문 자체가 9할의 반사작용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면 다른 길이 열린다. HR은 결핍을 보면 채우려 한다. 그 반사작용이 그날 “다른 부서로 옮겨주겠다”를 만들었다. 채울 수 없는 것 앞에서 채우려 드는 것이 문제였다.
채울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일은 넷이다. 넷 다 ‘더 주는 것’이 아니다.
1. 침범하지 않는 것. 핵심인재에게 조직이 하는 일은 늘 ‘더’다. 더 큰 과제, 더 빠른 사다리, 더 이른 낙점. 세네카가 말한 여가(otium)는 게으름이 아니라 자기와 마주 앉는 시간이고, 그것은 조직이 무언가를 함으로써가 아니라 하지 않음으로써만 줄 수 있다. 다음 자리를 말하지 않는 시간. 낙점을 유예하는 여백. 아우구스투스에게 필요했던 것은 더 큰 권한이 아니라 은퇴의 허락이었다.
2. 시험받을 기회를 주는 것. 한 번도 밀려나 본 적 없는 사람은 자기가 누구인지 모른다. 승계 후보에게 성공이 보장된 확장 과제만 주는 것은 그의 1할을 계속 굶기는 일이다. 필요한 것은 실패할 수 있는 과제, 자기 크기를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시험이다. 그 시험에서 “이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다”를 스스로 알게 된다면, 그것도 육성의 성공이다. 세네카는 카토와 키케로를 예로 든다. 카토는 광장에서 강했고 키케로는 글에서 강했다. 둘이 자리를 바꾸었다면 둘 다 비참했을 것이다.
3. 답하지 않고 묻는 것. “지겹다”를 들었을 때 조직의 반사작용은 “어디로 옮겨줄까”다. 1할의 대화는 다르게 시작한다. 무엇이 반복된다고 느끼는가. 이 자리가 당신 자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정해준 다음 자리가 당신이 원하는 자리인가. HR이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이 허용되는 공간을 여는 것. 그리고 그 대답이 “여기가 아니다”일 때, 존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4. 인사 담당자 자신의 선을 지키는 것. 세네카는 양보하라고 말한다. 살아남기 위해 양보하고, 어른의 지혜로 양보하라고. 그러나 마지막 선 하나는 지키라고. 양보할 수 없는 단 하나가 있는 사람만이 그 앞의 모든 양보를 미덕이라 부를 수 있다. 인사 담당자의 그 선은 무엇인가. 나는 이렇게 정했다. “원인 미상, (공란)”이라는 기록에 동의하지 않는 것. 사람은 지표의 합이 아니라는 것. 데이터로 설명되지 않는 퇴사가 있다는 것이 제도의 실패가 아니라 제도의 한계라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하나 더. 리텐션이 항상 정답은 아니다. 세네카는 자기 본성에 맞지 않는 일에 평생을 바치는 것보다 슬픈 일은 없다고 썼다. 그 팀원에게 이 조직이 그런 자리였다면, 붙잡는 것이 그에게도 조직에게도 옳지 않았다. HR의 성과 지표에 ‘잘 보내준 사람’이라는 항목이 없다는 것, 그것이 문제다.
People Analytics에게 남는 숙제
이 사례를 예측 모델에 넣어보면 어떻게 되는가. 안 잡힌다. 모든 변수가 양호하다. 재직 기간, 평가 등급, 승진 속도, 보상 분위, 몰입도 점수. 어느 것도 위험 신호를 내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쓰는 이탈 예측 모델이 이 사람을 찍을 확률은 0에 가깝다.
그런데 데이터에 있었던 신호가 하나 있다. 시험받지 않은 성공의 길이다.
1할은 측정할 수 없다. 그러나 1할이 한 번도 드러날 기회가 없었다는 사실은 측정할 수 있다. 실패 경험, 보직 이탈, 승진 누락, 조직 개편으로 사라진 자리. 이 충격이 단 한 번도 없이 상승만 있었던 기간. 그 기간이 길수록 그 사람이 누구인지 조직도 본인도 모른다는 뜻이다.
편안한 시기의 데이터는 9할의 기록이다. 분석이 봐야 할 것은 정상 상태의 점수가 아니라 충격 이후의 궤적이다. 승진 누락 뒤 6개월, 실패한 프로젝트 뒤 1년,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구간에서 그 사람이 무엇을 선택했는가. 세네카의 말처럼 결심을 깬 것이 패배가 아니다. 다시 결심하지 않는 것이 패배다. 데이터로 볼 수 있는 유일한 1할의 그림자는 거기에 있다.
그 팀원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세네카는 어디로 가든 당신은 당신과 함께 갈 것이라고 썼다. 그 팀원은 지금 어디에 있든 자기 자신과 함께 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이 조직 안에서 할 수 없었다는 것이 우리의 몫이고, 그것을 알고 떠났다는 것이 그의 몫이다.
인사는 사람의 9할을 다루는 일이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9할은 크고, 잘 다뤄야 하고, 그것을 잘 다루는 것이 이 직업의 대부분이다. 부끄러운 것은 나머지 1할이 없다고 믿는 것이다. 지표가 완벽하면 사람도 완벽하다고 믿는 것. 면담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다고 믿는 것.
쉬고 싶다는 말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그것은 당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다.
떠난 사람도, 남은 사람도, 그리고 인사 담당자도.
함께 읽으면 좋은 글
- 일손이 부족해서 사람을 뽑지 마라 — 빈자리를 1년 비워두고 배운 팀장의 채용 원칙
- 내가 빛나야 하는 팀장 vs. 남을 빛나게 하는 팀장 — 유능한 팀원이 팀장이 되어 실패하는 이유
- 리더십 파이프라인 진단 프레임워크 — 승계 계획을 데이터로 관리하는 법
참고: 세네카, 『인생은 짧지 않다』 (원전: De Brevitate Vitae, 기원후 49년경). 본문의 인용은 한국어 번역본 발췌 기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