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원 면담이 끝나갈 무렵, 늘 비슷한 문장이 나온다. “저는 팀장은 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질문이 돌아온다. “팀장님은 실장이 되고 싶으세요?” 나는 웃으면서 대답한다. “아니.” 농담처럼 주고받지만 둘 다 진심이다.
이 대화가 한 팀의 이야기라면 넘길 수 있다. 그런데 동료 팀장들을 만나도, 친한 후배들을 만나도 같은 말이 나온다. 보직자는 되고 싶지 않다. 이미 보직을 맡은 팀장들은 후배에게 물려주고 싶어 한다. 위로 가고 싶은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지금 있는 자리에서 내려오고 싶은 사람이 더 많다. 10년 전이라면 이 장면은 특이한 사례였다. 지금은 통계다.
이 현상에 이름이 붙었다. 리더포비아(Leader-phobia). 영어권에서는 ‘의식적 언보싱(conscious unbossing)’이라 부른다. 그리고 대부분의 해설은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책임지기 싫어한다.”
나는 이 문장이 설명이 아니라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한 세대 전체가, 그것도 서울과 런던에서 동시에 같은 행동을 한다면 그건 성격이 아니라 구조다. 구조가 바뀌면 합리적인 선택도 바뀐다. 이 글은 그 구조를 20년 전으로, 그리고 3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숫자는 이미 세대를 넘어섰다
먼저 규모부터 확인한다. 이 현상이 얼마나 넓은가.
영국 인재솔루션 기업 로버트 월터스가 Z세대 직장인 3,600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2%가 중간관리자가 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72%는 팀을 이끄는 대신 개인 전문성을 키우는 경로를 택하겠다고 했다. 이유의 상위에는 ‘스트레스는 높고 보상은 낮다’가 있었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19~36세 직장인 850명을 조사한 2030 직장인의 리더 인식 조사(2025)에서, 리더 역할을 맡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다는 응답이 47.3%였다. 불안하다는 22.1%의 두 배가 넘는다. 중간관리직을 원하지 않는 이유 1위는 ‘팀·조직 성과를 책임지는 부담'(42.8%), 2위는 ‘업무량 증가'(41.6%)였다.
여기까지는 ‘젊은 세대’ 이야기로 읽힌다. 그런데 공공기관 감사 결과를 보면 그림이 달라진다. 감사원의 공공기관 인력 운용 감사에서 35개 기관 5,471명 중 57.1%가 초급간부 승진 기피 현상이 있다고 답했고, 같은 감사에서 2015~2022년 재직 상임이사의 28.9%는 승진 후 오히려 연봉이 줄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승진했는데 월급이 준다. 이건 세대의 가치관이 아니라 계산기의 문제다.
숫자가 말하는 것은 하나다. 리더 자리는 손해 보는 거래가 됐다. 그럼 언제부터, 왜 그렇게 됐는가.
리더 자리는 원래 ‘패키지’였다
산업화 시대의 팀장 자리는 네 가지가 한 묶음이었다. 책임, 권한, 보상, 존경. 책임을 더 지는 대신 사람을 움직일 권한을 받고, 급여가 뛰고, 명함이 존재를 증명했다. 이 묶음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다리를 올랐다.
지난 20년 동안 조직은 이 패키지에서 세 가지를 하나씩 빼냈다.
| 빠진 것 | 무엇이 바꿨나 | 지금 팀장에게 남은 것 |
|---|---|---|
| 권한 | 근로시간 제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수평 조직 담론 | 지시할 수는 없고 설득해야 하는 자리 |
| 보상 | 관리자 프리미엄 축소, 자산 가격 급등 | 승진 급여, 직책 수당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보상 |
| 존경 | 정보 비대칭 소멸, 조직 밖 정체성의 등장 | 팀원이 팀장보다 시장을 먼저 아는 상황 |
| 책임 | 법제화, 명문화 | 그대로. 오히려 늘었다 |
책임만 남기고 세 개를 뺀 자리를 사람들이 기피한다면, 기피하는 사람이 이상한 게 아니다. 자리를 그렇게 만든 쪽이 이상한 것이다.

그런데 세 가지가 빠져나간 데는 더 근본적인 두 개의 사건이 있었다. 18개월 사이에 터진 두 사건이다.
2007년과 2008년, 두 개의 독점이 끝났다
2007년에 아이폰이 나왔고, 2008년에 금융위기가 왔다. 이 둘은 리더십 패키지의 서로 다른 반쪽을 부쉈다.
금융위기는 ‘조직은 나를 지켜준다’는 약속을 공개적으로 깼다. 산업화 시대 리더십 거래의 전제는 이랬다. 지금 책임을 더 지면 조직이 너의 미래를 보장한다. 2008년 이후 지금 30대는 성실히 승진한 40~50대 관리자가 하루아침에 정리되는 장면을 자기 부모의 얼굴로 봤다. 한국은 사실 한 번 더 앞선다. 1997년 외환위기가 평생직장을 먼저 깼고, 2008년은 그것이 일회성이 아니었음을 확인시켰다.
이때부터 커리어는 조직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관리하는 자산이 됐다. 커리어에 대한 권한이 조직에서 개인으로 넘어간 것이다. 자산 관리자의 눈으로 보면 특정 회사의 팀장 자리는 유동성 낮은 위험 자산이다. 회피는 반항이 아니라 포트폴리오 결정이다.
아이폰과 그 뒤를 이은 검색·SNS·클라우드는 권위의 물질적 기반을 무너뜨렸다. 리더의 권위는 오랫동안 정보 비대칭에서 나왔다. 위로 갈수록 더 많이 알았고, 경험은 복제되지 않았다. 스마트폰 이후 15년 동안 이 비대칭이 사라졌다. 신입이 팀장보다 시장을 빨리 알고, 2023년 이후 생성형 AI는 경험에 기반한 판단마저 상당 부분 복제한다. “왜 저 사람이 나를 지휘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근거가 얇아졌다.
동시에 SNS는 조직 밖의 정체성을 대규모로 가능하게 했다. 명함이 곧 정체성이던 시절, 승진은 존재 증명이었다. 지금은 조직 밖에서 인정받을 통로가 수십 개다. 승진에서 ‘존경’이 빠져나간 경로가 이것이다.
정리하면, 조직이 독점하던 두 가지, 미래에 대한 보장과 정보가 각각 금융위기와 스마트폰에 의해 독점이 아니게 됐다. 팀장 자리는 그 독점 지분을 나눠 받는 자리였다. 독점이 사라지자 지분 없는 의무만 남았다.
여기까지가 20년의 이야기다. 그런데 시간 축을 더 넓히면, 이 20년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
인류학이 말하는 것: 리더를 꺼리는 게 원래 정상이었다
인류학자 크리스토퍼 보엠(Christopher Boehm)은 ‘Hierarchy in the Forest’(1999)에서 수렵채집 사회 수십 곳의 민족지를 비교했다. 결론은 우리 직관과 반대다. 인류 역사 대부분에서 인간 집단은 위계를 세우는 쪽이 아니라 위계를 눌러 없애는 쪽으로 작동했다. 보엠은 이것을 역지배 위계(reverse dominance hierarchy)라 불렀다. 남을 지배하려 들거나 잘난 척하는 사람은 조롱, 배제, 때로는 추방으로 끌어내려졌다.
그 사회에서 리더는 어떤 자리였나. 되고 싶은 자리가 아니라 필요할 때 잠깐 맡고 내려오는 부담이었다. 사냥을 잘 아는 사람이 사냥을 이끌고, 끝나면 평범한 구성원으로 돌아갔다. 지위가 아니라 기능이었다.
리더가 되려고 경쟁하는 것이 정상이 된 건 언제부터인가. 농경과 잉여가 생기고 대규모 위계 조직이 등장한 이후다. 30만 년 인류사에서 보면 최근 1만 년, 그리고 우리가 ‘조직인’이라 부르는 인간형은 대량생산 체제가 만든 지난 100년 안팎의 산물이다.
이 눈으로 보면 리더포비아는 비정상이 아니다. 잠깐의 예외가 끝나고 기본값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위계 상승을 열망하던 산업화 세대가 인류학적 예외였고, 생존 불안이 줄고 정보가 평등해지자 인간은 원래 하던 대로 돌아가고 있다. 30만 년 동안 하던 대로.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인가. 보엠의 역지배 위계가 작동하려면 두 조건이 필요하다. 지배자가 정보와 자원을 독점하지 못할 것, 그리고 구성원이 지배자 없이도 생존할 수 있을 것. 앞 절에서 말한 두 사건이 정확히 이 두 조건을 복원했다. 스마트폰이 정보 독점을 깼고, 개인화된 커리어가 조직 없는 생존을 가능하게 했다. 인류학적 기본값이 돌아올 조건이 20년 만에 갖춰진 것이다.

진짜 위험은 기피가 아니라 ‘누가 남느냐’다
기피 현상 자체보다 조직이 더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역선택이다.
자기 시장가치를 아는 사람일수록 팀장 자리를 거절한다. 그들에겐 대안이 있다. 결국 리더 풀에는 두 부류가 남는다. 자리 자체를 원하는 사람, 그리고 대안이 없는 사람. 리더십의 평균 질이 떨어지고, 그 리더 밑에서 일한 사람들은 “리더란 저런 것”이라고 학습해 더 강하게 기피한다.
이건 자기강화 루프다. 세대가 지나면 저절로 풀리는 것이 아니라 방치하면 가속된다. 감사원 심층면담에서 나온 “우수한 인재가 승진을 기피하면 젊은 직원들은 롤모델을 잃는다”는 내부 목소리는 정확히 이 루프를 가리킨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관리자 수락률은 어떤 조직문화 설문보다 정직한 지표다. 리더 자리를 받는 것은 그 조직에 자기 커리어의 5~10년을 거는 장기 베팅이다. 사람들이 베팅을 안 한다는 것은 겁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조직의 미래를 믿지 않는다는 뜻이다. 말로 하는 설문은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자기 커리어를 걸지 않는 행동은 거짓말을 못 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우리 조직의 팀장 수락률이나 보임 후 이탈률을 숫자로 본 적이 없다. 그 지표를 관리하는 회사 자체가 드물다. 그런데 숫자가 없어도 팀장들끼리 모이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사실이 하나 있다. 팀장을 내려놓고 싶어 하는 팀장이 꽤 많다는 것. 이 공감대 자체가 데이터다. 측정하지 않았을 뿐, 현상은 이미 옆에 있다.
이 글의 핵심 3가지
- 리더포비아는 세대의 성격 변화가 아니라 팀장 자리가 손해 보는 거래로 바뀐 결과다. 패키지에서 권한·보상·존경이 빠지고 책임만 남았다.
- 출발점은 2007~2008년, 정보 독점(스마트폰)과 미래 보장 독점(금융위기)이 동시에 끝난 시점이다. 커리어 권한은 조직에서 개인으로 넘어갔다.
- 인류학적으로 보면 리더 기피는 30만 년의 기본값이고, 위계 열망이 100년의 예외였다. 비정상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산업화 세대는 사다리를 오르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믿었다. 인류학은 그것이 본성이 아니라 조건이었다고 말한다. 조건이 바뀌면 행동은 돌아온다. 젊은 세대는 이 변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정확히 계산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조직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독점을 되찾을 수는 없다. 남은 길은 리더라는 자리를 다시 정의하는 것뿐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한다. 팀장 자리를 실제로 분해해 보면, 사람에게 남겨야 할 것과 시스템에 넘겨야 할 것이 갈린다.
리더포비아는 사람이 변한 게 아니다. 리더십이 서 있던 바닥이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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