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에 승진이 끝난다, 그리고 남은 25년 — 직급 통합이 파놓은 동기부여의 함정

직급 통합 이후 40대에 승진이 멈춘 직장인의 정체 구간을 표현한 대표 이미지

한 직원이 30대 초중반에 한 번,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에 또 한 번 승진한다. 그리고 끝이다. 보직자로 임명되지 않는 한, 그에게 남은 직장 생활 20년 넘는 시간 동안 명함은 바뀌지 않는다. 정년이 65세까지 연장된다면 그 정체 구간은 최대 25년에 이른다. 우리가 “수평적 조직문화”라는 이름으로 도입한 직급 통합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한때 직급 통합은 시대의 정답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금, 그 정답을 다시 의심해볼 때가 됐다.

직급을 없앴다고 수평조직이 되진 않았다

사-대-과-차-부로 이어지던 촘촘한 직급은 분명 권위적이었다. 위아래가 명확한 만큼 협업과 소통을 가로막는다는 비판을 받았고, 그래서 많은 기업이 유행처럼 직급 단계를 줄였다. 5~6단계를 2~3단계로 압축하면서 수평적 문화와 자유로운 소통을 기대했다.

절반은 맞았다. 호칭이 단순해지고 보고 라인이 짧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부러워하던 미국·유럽 기업 수준의 수평적 문화, 직급을 의식하지 않는 소통은 끝내 오지 않았다. 직급을 없애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문화는 직급표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과 권한 구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직급 통합은 기대했던 수평 문화를 절반만 안겨주면서, 대신 무언가를 조용히 가져가 버렸다.

진짜 잃은 것은 ‘승진’이라는 동력이었다

직급 단계가 줄어든다는 말은, 곧 직원이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사라진다는 말과 같다.

과거 사-대-과-차-부 체계라면 한 사람이 직장 생활 동안 네다섯 번은 승진의 순간을 경험했다. 그 순간마다 새로운 호칭, 새로운 기대, 새로운 책임이 따라붙었고, 그것이 곧 동기부여였다. 그런데 2~3단계로 압축된 체계에서는 사실상 두 번의 승진으로 모든 게 끝난다.

당시에도 이 점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다만 “동기부여보다 수평적 소통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승진 기회 축소라는 부작용을 의도적으로 덮어두었을 뿐이다.

그 판단이 통하려면 한 가지 전제가 필요했다. 조직의 중심이 계속 젊은 직원이어야 한다는 전제다. 그런데 바로 그 전제가 지금 무너지고 있다.

과거 5~6단계 직급 사다리와 통합 후 2~3단계 직급 구조를 비교한 도식

데이터가 가리키는 지점, 40대 초반

내가 몸담은 조직에서 인력 데이터를 분석하며 가장 분명하게 확인한 사실이 있다. 40대 초반을 지나면서 생산성이 눈에 띄게 꺾인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꺾이는 시점이 단순히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데이터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생산성 하락은 신체적 노화보다 신변 변화의 소멸과 더 강하게 맞물려 있다. 다시 말해 더 올라갈 곳이 없어지는 순간, 더 증명할 무대가 사라지는 순간과 생산성 하락 구간이 겹친다.

여기서 가정을 하나 해보자. 만약 이들에게 사-대-과-차-부 같은 세분화된 직급이 그대로 적용됐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한 번의 승진 기회가 더 주어졌을 것이고, 그 한 번의 계단이 생산성이 꺾이는 지점을 40대 초반에서 40대 후반으로 늦췄을 가능성이 크다. 승진이라는 사건 하나가 생산성 곡선의 변곡점을 수년 단위로 밀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조직 고령화라는 구조적 흐름이 겹친다. 인력이 고령화되면 보직자의 평균 연령도 함께 올라간다. 기존 보직자들이 자리를 오래 지킬수록, 새로 최고 직급에 오른 사람에게 돌아갈 보직은 점점 줄어든다. 결국 상당수 인력이 40대에 직급의 천장에 닿은 뒤, 정년까지 20년 넘게 아무런 변화 없이 머무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동기부여가 사라진 인력이 생산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데이터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승진 정체 시점과 생산성 곡선의 변곡점이 겹치는 40대 초반 구간을 나타낸 그래프

AI와 고령화가 조직의 중심을 바꿔놓았다

직급 통합을 도입하던 시절, 조직의 주인공은 젊은 직원이었다. 제도도, 문화도 이들을 중심으로 설계됐다. 그런데 지금은 그림이 완전히 달라졌다.

신입 채용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줄었다. 조직마다 AI가 들어오면서, 예전에 신입사원이 맡던 데이터 정리, 슬라이드 초안 작성, 기초 자료 수집 같은 일을 이제 AI 에이전트(AI Agent,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인공지능)가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입에 대한 수요 자체가 구조적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조직의 스포트라이트는 이동했다. 도메인 지식을 충분히 갖춘,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나이 있는 직원들이 조직의 중심으로 올라섰다. AI가 보편화되면서 보고 단계는 더 짧아지고, 구성원에게는 단순 실행이 아니라 더 상위의 역할, 더 적극적인 기획과 큰 그림, 새로운 발상이 요구된다. (이 변화에 대해서는 【AI 에이전트가 중간관리자를 없앴다 — 조직 구조는 어떻게 바뀌는가】에서 더 자세히 다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모순이 드러난다. 조직은 고령 인력에게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의 기여를 기대하면서, 정작 이들의 동기부여 장치는 직급 통합으로 진작에 제거해버린 것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 동기를 줄 수단은 비워둔 셈이다.

그래서, 이제는 직급을 다시 쪼갤 때다

논리를 정리하면 결론은 한 방향을 가리킨다.

직급 통합으로 기대했던 수평적 문화와 소통은 절반의 성공에 그쳤고, 그마저도 이제는 AI 협업 도구로 상당 부분 대체되거나 더 이상 최우선 가치가 아니게 됐다. 반면 직급 통합이 가져간 동기부여의 손실은, 조직의 중심이 고령 인력으로 옮겨간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뼈아프게 돌아오고 있다.

그렇다면 답은 역설적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직급의 추가 통합이 아니라 재세분화다. 40대에 천장에 닿은 핵심 인력에게 올라갈 계단을 다시 만들어주고, 생산성이 꺾이는 변곡점을 뒤로 밀어내는 것. 한때 ‘권위적’이라며 걷어찼던 촘촘한 직급 구조가, 고령화·AI 시대에는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동기부여 설계가 될 수 있다.

물론 과거의 사-대-과-차-부를 그대로 되살리자는 말은 아니다. 핵심은 단계의 수가 아니라, 직원이 직장 생활 내내 ‘아직 올라갈 곳이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구조를 회복하는 데 있다. 호칭을 늘리든, 전문가 트랙(Expert Track)을 신설하든, 등급 안에 세부 레벨을 두든, 방식은 조직마다 다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다. 우리는 젊은 조직을 전제로 만든 제도를, 고령화된 조직 위에 그대로 얹어둔 채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한탄하고 있다. 제도가 인력 구조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직급 통합이 시대의 정답이던 시절은 지났다. 이제는 거꾸로, 직급을 다시 나누는 용기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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